
[ACADEMIC]
개화 Blossoming
개화는 풀이나 나무의 꽃이 핀다는 뜻이면서, 사람의 지혜가 열려 새로운 것을 갖게 된다는 뜻도 함께 지닌다. 두 뜻을 한 화면에 겹쳐 두고 싶었다. 그래서 늘 곁에 있어 눈길이 가지 않던 정물들 — 포도 한 송이, 화분의 줄기, 의자의 등받이, 비닐봉지에 담긴 사과 — 을 평소에 보지 않던 각도와 거리에서 다시 보았다.
같은 정물이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조각상을 여러 방향에서 찍으며, 하나의 대상 안에 여러 얼굴이 있다는 사실이 곧 내 안의 여러 자아와 겹친다고 느꼈다. 정물에 나를 빗대어 촬영한 이유다.
에드워드 웨스턴과 F64 그룹의 작업에서 출발했다. 조리개를 조일수록 콘트라스트가 높아지고 재질감이 강조된다는 원리를 따라, 두 번째 촬영 회차에서는 카메라가 허용하는 가장 작은 조리개인 f/40까지 조여 장노출로 찍었다. 첫 회차는 f/3.5에서 f/5 사이의 얕은 심도로, 초점이 닿은 한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를 흐리게 밀어냈다. 선명함과 흐림을 같은 시리즈 안에 나란히 두어, 하나의 대상이 어떻게 다르게 읽히는지 보이려 했다.
흑백으로 촬영한 것은 명암과 조명을 전면에 세우기 위해서다. 색이 빠지면 형태와 질감, 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개화의 두 번째 뜻 — 무언가가 새로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 에 가장 가까운 상태라고 생각했다.








